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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예고 열흘 전, 귀향길에서 만난 옆집 상담사집을 비우라는 문자 한 통, 12년 만의 귀향집을 비우라는 문자 한 통에, 나는 12년 만에 고향으로 내려가는 완행열차에 올랐다. 윤지섭, 서른아홉, 서울에서 조명 디자이너로 일하다 공황장애 때문에 반년째 일을 쉬고 있는 처지였다. 기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가슴 한쪽이 쿵쿵 뛰었는데, 그게 공황 때문인지 아니면 곧 마주할 바다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선창리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장례식 날 형 지원과 아버지의 유산 문제로 크게 다퉜고, 그날 뱉은 말들이 아직도 목에 걸린 가시처럼 남아 있었다. 형은 그 길로 원양어선을 타러 떠났고, 나는 서울로 올라와 다시는 안 갈 것처럼 살았다.그런데 구청에서 보낸 공문이 발목을 잡았다. 도로..
사랑한 남자 트로츠키2004년 아바나, 한 남자가 연인의 장례식장에 앉아 있습니다. 그는 삼십 년 가까이 입 밖에 내지 못한 이야기를 꺼낼 때가 됐다고 느낍니다.그 이야기는 해변에서 몇 번 마주친 정체불명의 노인에 관한 것입니다. 이 노인이 누구인지, 이반이 왜 두려워했는지가 레오나르도 파두라의 《개를 사랑한 남자 트로츠키 1》을 끌고 가는 힘입니다.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은 반전을 숨기지 않는 소설입니다. 그 대신 역사적 사실에 바싹 붙어 독자를 다른 종류의 긴장 속으로 데려갑니다.30초 핵심 요약2004년 아바나, 화자 이반이 연인 아나의 장례식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구조입니다.삼십 년 전 해변에서 마주친 노인의 정체가 이야기의 중심 수수께끼입니다.저자 파두라는 역사적 사실에 충실해 자료 조사가 치밀한..
1. 11월, 선전에서 다시 만나는 미국과 중국트럼프와 시진핑이 10월 정상회담에서 무역합의에 도달한 지 한 달이 채 안 됐습니다.그런데 벌써 다음 만남이 예고됐습니다. 장소는 중국 선전, 의제는 AI입니다.불과 몇 주 전까지 관세와 수출통제로 날을 세우던 두 나라가 이번엔 기술 테이블 앞에 다시 마주 앉습니다. 같은 상대를 두고 싸움과 악수를 반복하는 모습입니다.관세나 대만 문제로 으르렁대던 두 나라가 AI 앞에서는 손을 잡으려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경쟁과 협력이 같은 테이블 위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국면입니다.30초 핵심 요약미중이 11월 선전 정상회의에서 AI 협력을 논의할 예정입니다.왕이 외교부장은 AI 공동 발전과 관리에 양국이 책임이 있다고 밝혔습니다.국제규범 논의를 촉구하는 중국 측 발언..
만삭으로 돌아온 고향집, 15년 만에 다시 만난 친구혼자 보내는 밤, 만삭의 몸으로 고향에 내려오다서연은 만삭의 배를 가만히 쓰다듬으며 마을 어귀 느티나무 아래 멈춰 섰다. 임신 36주, 서울살이를 접고 고향집 대문을 열어젖힌 지 벌써 열흘째였다. 베트남 공장 증설 일로 두 달째 돌아오지 못하는 남편 민호 대신, 서연은 첫아이만큼은 엄마가 평생 밟고 살던 이 흙바닥에서 낳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짐을 쌌다. 마당엔 사람 허리까지 자란 잡초가 무성했고, 엄마가 떠난 지 벌써 오년, 아버지마저 재작년 재혼해 도시로 나간 뒤로 이 집은 줄곧 비어 있었다. 삐걱, 소리를 내며 창고 문을 밀어보니 먼지가 풀썩 피어올랐고, 켜켜이 쌓인 상자를 뒤적이던 손끝에 낡은 공책 한 권이 걸려 툭 떨어졌다. 펼쳐보니 뒷산을 넘..
미국 1. 같은 나라인데 왜 4년마다 쪼개질까요미국 대선 지도를 펼쳐 보면 매번 비슷한 선을 따라 빨강과 파랑이 갈립니다. 4년마다 후보가 바뀌어도 그 선은 거의 움직이지 않습니다.이상한 건 그 선이 주州 경계와 정확히 겹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텍사스 안에도, 캘리포니아 안에도 전혀 다른 투표 성향이 공존합니다.콜린 우다드는 이 오래된 선을 추적해온 정치지리학자입니다. 13년 전 《분열하는 제국》에서 북미 대륙을 11개 문화권으로 나눈 바로 그 저자입니다.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은 미국의 주 경계가 사실상 무의미하다고 말합니다. 진짜 경계는 9개의 지역 문화권이며, 그 경계선이 정당보다 강력하게 사람들의 삶을 가른다는 것입니다.30초 핵심 요약미국 50개 주 경계는 정치적 실체를 설명하지 못한다저자는 ..
오랜 병간호 끝, 짝꿍이 건넨 돋보기 하나돋보기를 쥔 아이먼지책방의 셔터를 올리는 손이 오늘도 먼저 떨렸다. 마흔을 앞둔 선재는 책 냄새보다 익숙해진 소독약 냄새를 코끝에 매달고 살았다. 2년 전부터 어머니 유정희의 눈이 조금씩 뿌옇게 흐려지더니, 이제는 돋보기를 대고도 신문 제목조차 제대로 읽지 못했다. 혼자 가게를 지키고 혼자 어머니를 돌보는오랜 병간호의 나날이, 어느새 그의 어깨를 짓누르는 일상이 되어버렸다.그래도 유정희는 아들 앞에서 유독 괜찮은 척을 했다.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도 괜찮다, 간판 글씨가 안 보여도 괜찮다, 그 말버릇이 선재를 더 지치게 만들었다. 선재가 바라는 건 거창한 게 아니었다. 그저 어머니가 넘어지지 않고, 자신도 하루쯤 마음 편히 잠들 수 있는 것, 그뿐이었다.책방 서랍 ..